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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심리학

브이로그를 보며 느끼는 ‘친밀감’의 정체: 유사사회적 관계(PARA-social)의 심리학

by 더인포월드 2025.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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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평범한 하루가 왜 이토록 끌릴까?

한 사람이 아침에 눈을 뜨고, 커피를 내리고, 산책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영상. 누군가는 이토록 평범한 일상을 담은 콘텐츠가 왜 인기를 끄는지 의문을 갖지만, 브이로그는 오늘도 수백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디지털 플랫폼을 휩쓸고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의 삶을 관찰하고, 비교하고, 감정을 대입하는 데서 심리적 쾌감을 느낀다. 이는 진화 심리학적 관점에서도 설명이 가능하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 집단 속에서 타인의 행동을 파악하고 학습하는 능력을 발전시켜 왔다.

브이로그는 이러한 관찰 욕구를 정제된 형태로 충족시켜 주는 콘텐츠다. 과장되지 않은 말투, 자연스러운 제스처, 의도되지 않은 공백은 콘텐츠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고, 시청자는 누군가의 삶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감정은 서서히 이입되고, 타인의 삶은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닌, 내 삶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몰입(Flow) 상태에 가까운 이 감정 경험은, 단순한 오락 이상의 심리적 만족을 제공한다.

 

 

유사사회적 관계란 무엇인가 – 미디어가 만들어낸 친밀감의 착각

심리학자 도널드 호턴(Donald Horton)과 리처드 윌(Richard Wohl)이 제시한 개념인 유사사회적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는 매체를 통해 만나는 인물과 형성되는 감정적 친밀감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핵심은 일방향적 관계라는 점이다. 시청자는 영상 속 인물의 말과 행동을 수용하고 반응하며 관계를 맺고 있다고 느끼지만, 반대로 콘텐츠 제작자는 그 시청자 개인을 인식하지 못한다.

브이로그는 이러한 유사사회적 관계를 가장 효과적으로 유발하는 콘텐츠 포맷이다. 대부분의 브이로그는 1인칭 시점으로 구성되며, 크리에이터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시청자에게 말을 건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 하루 어땠어요?" 같은 표현은 마치 대화의 일부분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이때 시청자는 자신이 직접 이야기 속에 들어온 듯한 감각을 경험하고, 정서적 유대감이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유사사회적 관계는 실질적인 감정적 친밀감의 착각을 유도하며, 마치 친구나 가족과 비슷한 정서를 형성하게 된다. 실존하지 않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이 감정은 실제 관계만큼의 심리적 영향을 미치며, 외로움을 완화하거나 감정적 공허함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미디어심리학

외로움의 시대, 브이로그는 새로운 정서적 연결이다

현대인은 연결되어 있으나 고립된 상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SNS로 수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실질적인 대화나 감정 공유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특히 혼자 사는 1인 가구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누구와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하루가 일상이 된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 속에서 브이로그는 단순한 콘텐츠 소비를 넘어 정서적 파트너가 되어준다.

브이로그 시청은 대부분 혼자 있을 때 이루어진다. 아침 식사 시간, 밤샘 작업 중,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시간. 그때 브이로그 속 인물의 목소리는 라디오처럼 흐르고,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안정감을 느낀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감정적 동반자 기능과 유사하다. 실제 대화는 없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외로움을 덜 수 있는 방식이다.

특히 정서적 대리 만족은 브이로그 콘텐츠의 핵심 효과 중 하나다. 누군가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고, 친구들과 웃으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며, 시청자는 간접적으로 그 감정을 체험한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내가 누릴 수 없는 감정일지라도, 잠시나마 그것을 함께 한 듯한 안정감을 준다. 이처럼 브이로그는 외로운 시대에 등장한 디지털 정서 연결의 매개체로 자리잡고 있다.

 

 

브이로그 알고리즘은 어떻게 친밀감을 설계하는가

브이로그 콘텐츠는 단순히 자극 없는 영상이 아니다. 알고리즘 기반의 디지털 플랫폼은 사용자의 선호, 감정 상태, 시청 시간, 반응 등을 분석해 개인에게 맞춤화된 친밀감을 제공하는 콘텐츠를 추천한다. 예를 들어, 조용한 일본 시골 일상 브이로그를 본 사용자는 곧 비슷한 톤과 연출, 분위기의 다른 영상들을 추천받게 되며, 점차 정서적으로 익숙한 콘텐츠 환경 속에 머물게 된다.

이러한 알고리즘은 시청자의 감정을 강화하며, 특정 유형의 감정적 반응을 반복 학습시킨다. 브이로그 속 크리에이터가 특정 음식을 자주 먹거나, 같은 카페를 반복 방문하는 것처럼, 시청자도 그 익숙함 속에서 심리적 안정과 패턴화 된 위로를 경험한다. 이는 정서적 소비가 단순히 취향의 영역을 넘어서, 알고리즘에 의해 설계되고 유지되는 시스템임을 의미한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 브이로그를 고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심리를 읽은 알고리즘이 가장 위로가 될 만한 콘텐츠를 추천하고, 그 감정을 반복 소비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미디어 심리학의 새로운 경향인 '감정 중심 콘텐츠 소비'의 대표 사례이기도 하다.

 

 

유사사회적 관계, 그 긍정성과 경계의 심리학

브이로그를 통해 형성되는 유사사회적 관계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외로움을 달래주고, 정서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며, 심지어 감정 회복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실제로 심리치료 영역에서는 가상 관계 활용을 정서 치료의 보조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이나, 대면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브이로그는 관계의 모의 연습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중요한 건 현실과의 구분이다. 유사사회적 관계는 어디까지나 일방적 감정 작용이며, 실제 인간관계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지나친 감정 이입은 현실과의 괴리를 키우고, 크리에이터에게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게 만들며, 나아가 감정 의존으로 발전할 위험도 있다. 브이로그의 편집된 장면들은 현실의 일부일 뿐이며, 감정은 선별적으로 표현된 것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한 브이로그 소비는 감정을 공유하되, 판단은 현실에 기반을 두는 것에서 시작된다. 콘텐츠를 통해 위로받는 것과, 콘텐츠에 감정을 의탁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브이로그는 ‘정서적 휴식 공간’이어야지, ‘현실 도피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미디어심리학

브이로그는 이 시대의 디지털 감정 언어다

브이로그는 단순한 '일상 기록 영상'이 아니다. 그것은 정서적 연결과 심리적 위안을 설계한 콘텐츠 플랫폼이며, 유사사회적 관계를 통해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감정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미디어는 점점 더 정서 기반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우리는 콘텐츠를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브이로그를 통해 경험하는 감정은 가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감정, 진짜로 필요한 관계, 진짜로 추구하는 삶의 조각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사사회적 관계는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 현대인의 감정 결핍을 메우는 새로운 심리적 도구로서 충분한 의미가 있다.

이제 브이로그는 미디어의 주변 콘텐츠가 아닌, 우리의 삶 속 정서적 언어로 자리 잡았다. 이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콘텐츠를 더 건강하게 소비하고, 더 깊이 있게 공감할 수 있는 첫걸음을 내딛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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